과학이야, 예술이야?…SF 영화 같은 '작은 방주'의 거대한 질문

입력 2022-09-12 11:17   수정 2022-09-12 11:29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높이 2.1m, 길이 12m의 거대한 흰 장벽이 서서히 분리되며 열린다. 노를 젓듯 35쌍으로 나뉜 몸체는 위아래, 양옆으로 출렁이며 장엄한 군무를 시작한다. 펼쳐진 노의 한쪽 면은 흰색, 한쪽 면은 검정색. 그 중심엔 정교하게 설계된 복잡한 기계 장치가 몸체를 이룬다. 힘차게 항해하는 거대한 배. 하지만 아무리 힘차게 노를 저어도 이 배는 꿈쩍않고 서있다. 선박 안에 앉은 두 명의 선장은 등을 마주한 채 앉아 정반대의 방향을 가리키며 선원들을 이끌기 때문이다.



9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MMCA 현대차 시리즈 2022'로 개막한 '최우람-작은 방주'의 전시장 풍경이다.

30년 간 살아 움직이는 듯한 '기계 생명체'를 만들며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최우람 작가(52)는 2013년 MMCA 서울관 개관 기념전에 참여한 후 10년 만에 같은 곳으로 돌아왔다. 전시의 제목은 '작은 방주'이지만 작품의 스케일은 거대하고, 메시지는 강렬하다.
30년 구축한 '기계생명체'의 세계관
최 작가는 1993년 중앙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조소를 전공한 국내파다. 그가 제작한 '기계 생명체'들은 마치 기계가 심장과 지능을 가진 것처럼 섬뜩하면서도 아름답다. 오차 없는 설계와 신선한 아이디어로 공학도와 예술가의 면모를 두루 갖춰 '대한민국 설치미술의 미래'로 불린다.

각종 비엔날레와 해외 유명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이번 개인전은 마지막으로 열렸던 국립대만미술관 전시 후 5년 만에 열리는 대규모 전시이기도 하다.

그는 "모든 생명체의 본질은 움직임이고, 기계문명 속에는 인간 사회의 욕망이 집약돼 있다"고 말한다. 그 동안 철학, 종교적 관점에서 기술 발전의 양면을 파고든 그는 이번 전시에서 인간 실존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공생에 관한 메시지를 던진다.

작가는 작품 창작 기간 동안 코로나 팬데믹 등을 겪은 동시대인들에게 "자신만이 항해를 설계하고 조금씩 나아가기를 바라는 응원과 위로를 담았다"고 했다.

'작은 방주' 작품은 매 시간대별 상연시간이 있다. 음악과 함께 5전시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로 변하기 때문에 미리 시간을 숙지하는 편이 좋다.
코로나 의료진 방호복, 꽃이 됐다
최 작가는 이번 전시에 53점을 출품했다. 이 중 49점이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신작들.주요 작품은 폐종이박스, 버려진 볏짚, 코로나19 의료진들의 방호복 천 등 흔한 재료에 최첨단 기술을 융합해 만들었다. 시각적 반전을 경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관람객들을 처음 맞이하는 '원탁' 작품은 지름 4.5m의 거대한 원형 상판을 짊어진 사람들(볏짚으로 만든 인간)이 서로 둥근 공(머리와 꿈을 상징)을 차지하기 위해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작품. 욕망에 가득 차 힘겹게 노력할수록 꿈은 점점 더 멀어지는 현실을 암시하기도, 인간들이 다같이 힘을 합쳐 공을 지켜내려는 공생을 의미하기도 한다.

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은 '하나'와 '빨강'이다. 금속 재료에 타이벡(Tyvek) 섬유를 입혀 꽃잎으로 형상화했다. 꽃봉오리에서 시작해 활짝 피어나는 과정이 반복되는 패턴인데, '하나'는 흰색으로, '빨강'은 강렬한 빨간색으로 표현했다.


흰색은 치열한 생사의 현장에서 힘겹게 일했던 이들과 코로나 팬데믹으로 혼란에 빠졌던 시대에 대한 위로의 의미를, 빨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생명력과 강렬한 순환의 의미가 담겼다.

설치 작품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탄생과정을 보여주는 드로잉이 연계 전시돼 작가의 아이디어를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과학과 기계 문명의 발전 속에서 인간이 어디까지 와있는 지, 기술이 예술을 어디까지 진화시킬 수 있는 지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전시다.

미술 애호가는 물론 공상과학(Sci-Fi) 영화 마니아들도 스크린 속 상상이 현실이 된 광경을 만날 수 있다. 에이로봇, 오성테크, PNJ, 이이언, 클릭트, 하이브, 한양대학교 로봇공학과 등이 작품을 위해 머리를 맞댔다. 전시는 내년 2월 26일까지다.

김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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